엔카도르의 짧생

Beyond Perception

짧생, 짧생 그리고 짭생

짧생은 짧은 생각, 단상(斷想)입니다.

 

저는 단상의 한자어를 좋아합니다.  짧은 생각이니 ‘짧다’라는 뜻을 가진 ‘단’을 쓸 것 같은데

의외로 ‘끊는다’는 뜻을 가진 ‘단’을 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.

긴 생각을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내어 짧은 생각으로 만들다니요!

뜨거운 김 모락모락 나는 긴 가래떡을 먹기 좋게 자르는 장면이 떠올라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.

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저의 마음이 이러합니다.

넓고 광대하여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말씀을 저는 오늘도 먹을 만큼만 잘라냅니다.

그래서 눈물 나게 행복합니다.

그리고 작아진 조각만큼 겸손해집니다.

 

짧생은 짧은 인생입니다.

 

모세는 우리의 평생이 ‘순식간’이어서 ‘날아간다’고 했습니다. 젊었을 때는 잘 못 느꼈더랬습니다.

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모세의 글에 매일매일 댓글을 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.

“22222222”

영원 앞에 선 찰나임을 망각하지 않는 오늘이고 싶습니다.

 

짧생은 ‘짭’생입니다.

 

모조품、 이미테이션을 의미하는 그 ‘짭’ 말입니다.

히브리서 기자는 땅의 제사장들이 섬긴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(type)과 그림자(shadow)라고 말합니다.

하늘에는 원형(archetype)과 실체(reality)가 있다는 뜻이겠지요.

그 시절 제사장들이 섬긴 것만 그러하겠습니까? 순식간에 날아가는 우리네 인생의 모든 것이 다 모형과 그림자입니다.

그래서 저는 이 ‘짭’ 인생 동안 ‘찐’을 추구하며 살기로 했습니다.

근본이 ‘짭’이다 보니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만、 오늘도 ‘찐’을 바라봅니다.

 

‘짭’ 이 어서 ‘찐’이 될 수 있는 날이 오길… 마라나타!!